나는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오래된 폐허 속에 잠들어 있었다. 기억은 잿더미처럼 흩어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머릿속을 맴도는 흐릿한 그림자들, 잊혀진 왕국의 잔해, 그리고 알 수 없는 절박함만이 남아 있었다. 시간의 무게는 무거웠다. 천 년이라는 세월은, 나의 존재를 짓눌렀다. 손을 뻗어 돌덩이를 움켜쥐자, 차가운 감촉만이 느껴졌다. 내 이름은 무엇이며, 이곳은 어디인가? 왜 나는 이 낡은 세상에 홀로 남겨졌는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은, 끔찍한 괴물들의 습격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흉측한 날개, 땅을 뒤흔드는 발굽 소리, 그리고 마법의 불꽃이 휩쓸고 간 잿더미. 그것은 마치 꿈속의 악몽처럼, 현실과 뒤섞여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잊혀진 왕국을 구원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곳, 고대 마법 왕국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1000년 전, 끔찍한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 왕국은 멸망했다. 당시, 나는 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였다고 한다. 내가 가진 능력은, 시간을 멈추는 얼음 마법이었다. 원하는 대상을 영원히 얼릴 수 있었지만, 왜 나는 잠들었고, 지금 깨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더 늙어서 죽기 전에 전설 속의 영생의 마법사를 만나기 위한, 알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니, 흉측한 형상의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몬스터들이, 폐허를 차지하고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 정복을 꿈꾸며,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기억과, 낡은 마법 지팡이 하나만으로는, 그들의 야망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치, 내가 갇힌 이 폐허처럼, 나의 앞날도 캄캄하기만 했다.

나는 낡은 유적 깊숙한 곳으로 발을 들였다. 그것은 마치 잊혀진 기억의 미로와 같았다. 돌길은 엉망으로 굴러다니는 파편들로 막혀 있었고, 천장은 검은 그림자로 뒤덮여 빛 한 점 드리우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는 메아리처럼 텅 빈 공간을 울렸고, 그 소리는 곧 잊혀질 듯 사라져갔다. 이 기괴한 침묵 속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고대 조각상들을 마주했다. 끔찍하게 일그러진 형상들, 썩어가는 듯한 표정. 그들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눈은 영원히 닫혀 있고, 그들의 존재는 부질없이 맴도는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것은 마치, 내가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찾기 위해 필연적으로 가야 하는 길과 같았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나는 더욱 기괴한 풍경과 마주했다. 벽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것들은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그 기호들은 나의 기억을 잠식하려는 듯, 끊임없이 나의 의식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것들을 해독하려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기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쓰여 있었고, 나는 그 언어를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마침내, 나는 유적의 중심부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석실이 있었고, 석실의 중앙에는 낡은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 위에는 핏자국처럼 보이는 붉은 액체가 고여 있었고, 그 냄새는 코를 찌를 듯 역겨웠다. 나는 그 액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나의 잃어버린 기억을 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액체에 손을 뻗었다. 나의 운명은, 어쩌면 이 붉은 액체 속에 잠들어 있을지도 몰랐다.